나누고 싶은 이야기

책을 많이 읽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을 받는다.
무지를 극복하기 위해서다.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 고전을 읽은 적이 없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들어가 보니 문화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사투리는 말을 안 하는 것으로 감출 수 있었지만, 무지는 감출 방법이 없었다. ‘장 발장’이⟪레미제라블⟫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읽었다.
무경험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판사가 되고 보니, 사건을 이해하기엔 내 경험이 너무 좁고 얕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도대체 계약서도 작성하지 않고 거액의 거래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잡히면 처벌받을 게 뻔한 일을 왜 되풀이하는지, 궁금한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경험을 늘리려고 해보니 이 또한 걸리는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당장 법관 윤리가 문제였다.
그래서 생각해 본 것이 두 가지다. 지금은 언론사 사장이 된 어떤 분이 사법연수생이었던 나에게, 법조인이 되면 초등학교 동창생과 꾸준히 만나라고 당부했던 기억이 떠올라 초등학교 동창생을 만나기로 결심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18년 동안 1년에 몇 회는 초등학교 동창생을(때로는 부부 동반으로) 만났으니 어느 정도는 실천한 셈이다.
두 번째가 책을 읽는 것이었다. 장르를 구별하지 말고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읽어보자 하였던 결심이 여기까지 나를 데려왔다.
무소신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어릴 때부터 내성적이었다. 남녀 공학 중학교 시절 소풍을 가서 선생님의 권유에 노래를 불렀는데
가사를 까먹어 끝을 맺지 못할 정도로, 그때 불렀던 노래가 남진의 <님과 함께>였다. 고등학교 때는 교복이 중고라서 반장을 하지 못했다.
대학교 가서는 사투리 때문에 남 앞에 나서지 못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무슨 결정을 하려면 무척 어려웠다. 결정을 하고 나면 곧 후회를 하게 되고.
어느 날, 내성적인 이유가 소신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했다.
앞서간 사람들의 생각을 알고 그들의 생각과 내 생각을 맞추어 보는 과정을 통해 생각이 단단해져 소신을 갖출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사회비판적인 내용을 포함해 많은 책을 읽게 되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려면 그 사람이 누구와 만나고 무슨 책을 읽는지 말해달라.”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혼돈의 시기에 그나마 생존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친구와 책 덕분이라 생각하니 이 글을 쓰는 감회가 남다르다.
모든 분들에게 책을 한번 읽어보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 문형배 님의⟪호의에 대하여⟫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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