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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치오의 아름다움”
2025-10-25 13:38:43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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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에서는 보통 공동 기도 시간 5분 전, 성당에 들어가기 전, 복도에 두 줄로 서서 잠시 마음을 모으고 신호가 울리면 입장해서 서로 마주 보며 절을 하고 자기 자리로 가는 예절이 있다. 그것을 우리는 스타치오라고 부른다. 라틴어 단어 자체는 정지, 휴식, 머무름이란 뜻이지만 영성적인 의미를 담아 다각적으로 쓰이기도 한다.

큰 축일에는 풍금 소리에 맞추어 들어가는데 멜로디를 따라 우리 마음가짐도 경건해지지만, 그 모습을 객석에서 지켜보는 이들도 감동을 받는다고 한다.

지난여름 본원 성당을 리모델링한 후 여러 변화가 있었고 나는 늘 앉아 있던 1층에서 2층으로 성당 자리를 이동하게 되었다.

침실과 가까운 것은 다행이지만 제일 아쉬운 것은 1층의 긴 복도에 서서 스타치오하는 기회를 잃어버린 것이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과 연로한 수녀들은 2층에 선 채로 성당 밖에서 스타치오 했다 안으로 들어오는 수녀들을 내려다보며 부러워하곤 한다.

스타치오 하기 전의 그 거룩한 설렘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1964년 봄 입회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의 일생은 어쩜 스타치오의 삶이 아니었을지!

살아서 움직이는 기쁨, 함께 기도하는 기쁨을 가슴이 터질 듯한 환희로 맞게 해주는 스타치오의 영성!

꼭 성당 앞에서가 아니더라도 또 다른 양상의 신호대기를 하고 있을 때 잠시 심호흡을 하며 기다리는 것, 엘리베이터 안에서 원하는 층수 버튼을 누르고 멈추어 선 순간 또한 스타치오이다. 우체국, 병원, 은행에 가서 대기 번호표를 받아 차례를 기다리는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도 스타치오이다.

잠자리에 들기 전 일기를 쓰기 전에 생각을 모으는 것도 스타치오이며 마음이 복잡할 때 성서나 시를 필사하며 선한 여유를 찾는 것도 스타치오이다.

공원에서 산책하다 말고 벤치에 앉아 바람 소리를 듣는 것, 우두커니 꽃을 바라보는 것 역시 스타치오이다.

좋은 책을 읽다 말고 어느 한 구절에 감동해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순간 두 손을 모으는 기도 역시 스타치오이다.

사람과 사람의 만나에도 스타치오의 순간들이 필요하다.

나는 요즘 어떤 방문객을 만나기 전에 잠시라도 미리 그를 기억하며 만나서 무슨 덕담을 건넬까?’,‘어떤 선물을 주면 좋아할까?’ 스타치오를 하는데 이 방법은 매우 도움이 된다.

종종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신도들이 글방을 방문하는 일이 있는데 그들은 즉시 요란하게 먼저 말을 건네거나 하지 않고 잠시 앉은 채로 고개 숙이며 두 손을 모으고 묵도를 마친다.

그건 어쩌면 집주인에 대한 존경과 예를 갖추고 축복을 빌어주는 혼자만의 애정 어린 예식이리라.

꼭 바쁜 일이 아닌데도 잠시 멈추어 서지 못하고 숨차게 살아가는 우리네 일상의 삶 안에서 우리는 스타치오의 영성을 새롭게 배울 필요가 있는 것 같다.

 

- 이해인 님의⟪기다리는 행복⟫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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