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고 싶은 이야기

“용서,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2026-03-28 13:09:11
관리자
조회수   10

KakaoTalk_20260328_130824344.jpg

 

스페인을 무대로 한 헤밍웨이의 단편소설 세속의 신전에는 아버지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가출하는 아들이 등장합니다.

아버지는 고통스러운 세월을 보내다 마침내 아들을 용서하고 화해하기로 결심한 후 일간지에 파코야, 모든 것을 용서한다.

그러니 오는 화요일 정오에 몬타나 호텔에서 만나자라는 내용을 광고를 냈습니다. 약속 장소에 나간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었을까요?

약속 장소에는 무려 800여 명이나 되는 파코라는 이름을 가진 젊은이들이 몰려와서 저마다 자기를 용서해 줄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참고로 파코는 당시 스페인에서 아주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이 헤프닝을 통해 헤밍웨이는 사람의 심층 깊은 곳에 존재하는 용서와 화해의 갈망을 보게 합니다.

동시에 용서와 화해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 겪어야 하는 고통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실 헤밍웨이는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못했습니다. 음악가였던 어머니는 아버지와 자주 부부 싸움을 했는데, 아버지는 심하게 잔소리를 해 대는 어머니를 피해 늘 밖으로 나돌곤 했습니다. 어머니는 또 어린 헤밍웨이를 계집아이처럼 꾸며서 데리고 나가는 걸 좋아했습니다. 그때마다 헤밍웨이는 수치심을 겪어야 했고, 이 때문에 평생 어머니를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나이 들어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노인과 바다⟫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핑계로 돈만 부치고 가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와 화해하지 못한 채 이별했던 것입니다. 이런 헤밍웨이의 남모를 고통을 그의 작품에서 맛볼 수 있습니다.

주기도문을 암송할 때마다 우리를 유난히 곤혹스럽게 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라는 구절입니다.

그다음 구절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게 용서해 달라고 간구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기도문을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예수님은 이 부분에 대해 한 번 더 강조해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에게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우리도 용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6:14-15).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가 이 부분에서는 무척이나 엄하게 다가옵니다.

엄청난 은혜나 행운을 만난 사람은 소소한 손해를 감수하면서 자신에게 작은 실수한 사람을 용서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만일 그런 이웃을 용서해주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용서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거나 용서의 은혜를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로 그 배은망덕한 종과 같은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남을 용서할 때에야 비로소 우리가 죄로부터 영원히 용서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세상 가운데 보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함으로 나도 용서를 받는 용서의 선순환으로 나와 죄로부터의 자유함으로 나아가는 이가 참 성도입니다.

 

 

- 이장호 님의⟪질주를 멈추고, 동행⟫중에서-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