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고 싶은 이야기

우리 인생의 의미를 찾는 여행을 시작해야겠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이 여행을 제대로 시작하지도 못 하게 하는 장애물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장애물들은 진리의 내용을 깊이 고민해 보고, 진실하게 반응할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가 버립니다.
첫 번째, 기독교인과 교회가 만들어놓은 장애물
가장 슬프고 안타까운 장애물이지요. 이 장애물은 여러 모양으로 나타납니다. 먼저, 언행일치가 되지 않는 기독교인들의 모습, 즉 위선이 있습니다.
기독교의 핵심 진리 중 하나는, 우리가 믿는 바가 삶으로 드러날 때에야 참된 진리라는 것입니다. 말만 있지, 실제 삶이 없는 모습이 오늘날 한국교회에 너무 자주 나타나서,
기독교 신앙을 대안으로 여기지 않을 뿐 아니라, 한국 사회의 진보를 가로막는 존재로 한국교회를 지적하기까지 하는 것은, 이 길의 안내자로서 난감함을 넘어서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두 번째, 지적 장애물
아시다시피 인간의 지성사는 계속 변합니다. 문화 역시 지속적으로 새로운 옷을 입으며 변하고 있습니다.
각 시대마다 진리를 찾아가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유일하고 보편적이고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다고 전제합니다.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진리가 있다고 믿었던 시대도 있었지만,
과거에도 그 모양과 강조점만 다를 뿐 그런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시대가 존재했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에 대해서, 성경이 말하는 진리에 대해서, 각 시대에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질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이런 질문에 기독교인과 교회는 성실하고 진실하게 답해야 합니다. 이러한 질문들에 적절한 답을 함께 찾지 않으면서 “무조건 믿으라”라고 말하는 것은 지적 태만이며 나아가 지적 폭력입니다.
인생 여정의 나침반이 될 수 있는 그런 진리를 찾으려 한다면, 우리의 질문은 언제나 타당합니다. 우리는 진실하고 겸허하게 질문해야 합니다,
세 번째, 실존적 장애물
우리 인생은 겉으로는 다 멀쩡해 보이지만, 내면에 많은 고통이 있습니다.
자신의 잘못된 선택과 실수가 불러온 고통이나 자신에게 불가항력적으로 닥친 고통이 있을 때,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나에게 이런 고통이 있을 수 있는가? 하나님이, 선한 하나님이 있다면 왜 이렇게 부조리하고 고통스러운 일을 나한테 주었는가?
좀 어려운 말로는, 실존적 고통의 경험이라고 할까요? 이런 깊은 고통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실존적 고통은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에 다가가는 일을 방해하기도 하지만, 디딤돌이 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프랜시스 쉐퍼라는 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솔직한 질문을 하면 솔직한 답변이 주어진다.”
솔직한 질문을 하면 반드시 주어진다. 무엇이? 솔직한 답변이. 아! 이 말은 제 인생에 소중한 모토가 되었습니다.
- 김형국 님의⟪풍성한 삶으로 초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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