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고 싶은 이야기
<키다리 아저씨>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1912년 미국 여류작가 웹스터가 쓴 아동문학 작품이지요. 한 고아 소녀가 자신의 후원자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소설입니다.
주인공 소녀는 후원자의 이름도 성도 모르고, 나이도 얼굴도 모릅니다. 다만 그의 다리가 길다는 인상이 남아 있었지요. 그래서 그냥 ‘키다리 아저씨’라고 부릅니다.
이 ‘키다리 아저씨’는 나중에 애니메이션과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이 동화가 발표되기 직전인 1907년에 미국은 대공황이라 불리는 심각한 금융위기를 겪었습니다. 수많은 은행이 파산하고 기업이 도산했지요.
서민들의 일상이 파괴되어서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길거리로 내몰렸습니다. 이런 힘겹고 어려운 시기에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막막한 사람들에게는 무엇이 중요했을까요? 무엇보다도 집도 잃고 부모도 잃어버린 고아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 무엇이었겠습니까?
그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손잡아 주는 사람, 돕는 사람, 바로 후원자입니다. 키다리 아저씨는 그런 후원자입니다. 그런데 그는 이름도 없고 얼굴도 없습니다.
조용히 그림자처럼 뒤에서 도와줍니다. 이런 후원자,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언제든 든든하게 지지해주고 응원하는 키다리 아저씨, 참 멋진 사람 아닙니까.
그런데 <키다리 아저씨> 이야기의 배경에는 당시 미국의 상황이 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는 금융위기를 계기로 금융재벌들이 급부상했습니다.
이른바 금융재벌들이 지배하는 세상, 돈이 지배하는 세상이 열린 것이지요. 돈이 곧 권력이요 명예였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돈으로 정치도 지배하고, 문화예술도 농락하고, 사회도 조종하고, 종교까지 쥐락펴락했습니다. 한마디로 이들이 후원하지 않으면 누구도 대통령이 될 수 없었습니다.
이전에는 뒤에 숨어서 그림자처럼 세상을 지배하던 자본이 이제는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고 노골적으로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들의 다른 이름이 바로 ‘후원자’입니다.
스폰서라고 하지요. 그런데 그들은 실제로는 ‘지배자’였습니다.
당시의 그런 상황을 생각하면, ‘키다리 아저씨’는 어쩌면 지배의 야욕을 숨긴 음흉하고 탐욕스러운 후원자를 희롱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쨌거나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숨기는 후원자,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원하지만, 그러나 지배하려 하지 않는 후원자, 그런 따뜻한 후원자가 있다면 정말 든든하지 않을까요.
그런 후원자가 있다면 팍팍한 세상도 좀 살 만하지 않을까요.
보혜사 성령은 저 세상의 ‘후원자’들과는 전혀 다른 분입니다. 보혜사 성령은 진리의 영입니다.
보혜사 성령은 우리를 도우셔서, 우리를 지지하고 후원하셔서 진리로 이끄시는 영입니다.
- 서재경 님의⟪아침마다 내 귀를 깨우치시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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